뿌리깊은나무 반상기 유기그릇 판매합니다. 1970년대에 할머님게서 부산에서 150만원을 주고 구입하셨다고 하네요-정확하게 56년 된 제품 입니다- 그릇 밑부분에 '뿌리깊은나무 반상기'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기능보유자이신 고 윤재덕 선생님께서 직접 제작하신 옥바리 그릇입니다 1994년에 돌아가셔서 더 이상 만들 수 없고, 직접 제작하여 같은 모양, 같은 크기를 여러 벌 구하기 어려운 그릇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나오는 유기그릇보다 그릇 두께가 더 두껍습니다.(직접 재 보니 1~2mm입니다.) 최근에 공장에서 찍어내는 유기그릇들보다, 직접 만든 유기그릇이 더 좋다고 하네요. 차례, 제사 지낼 때 쓰시거나, 한식 요리 담을 때 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윤재덕 선생님 프로필) 1914-1994. 중요무형문화재 유기장 기능보유자. 전라남도 임실 출생. 유기점을 해온 조부 윤화섭의 가문에서 출생하여 일찍부터 그의 고향인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 원회촌에서 놋쇠 다루는 일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16세 되던 해부터 이웃 김여칠의 일터에서 징, 대야, 유반, 괭과리 등을 만들고 점차 기술이 늘면서 방짜 식기류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힘이 좋아 메질, 집게질, 가질 등 방짜쇠를 다루는 여러 가지 기술면에서 뛰어난 솜씨를 나타내었으며 특히 궁그름 옥성기의 장인으로 손꼽혔다. 1차 주조과정을 거친 후 궁그름대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완성되는 궁그름 옥성기의 제작방식은 주조와 단조가 어우러져 성형되는 일명 반방짜 방법으로써 소리와 색이 뛰어난 유기의 효율적 생산방법이라 할 수 있다. 25세가 되던 1939년 이후에는 임실을 떠나 순천의 김호유기점, 여수의 송행두유기점, 곡성의 옥과유기점 등지에서 유기제작에 종사하였다. 이후 순천 금곡동에 유기공장을 차려 운영하고 있을 당시 뿌리깊은나무사에서는 전통문화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유기장을 찾게 되면서 당시 이름이 나 있었던 윤재덕의 방짜유기업을 후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1979년 6월 전남 보성군 벌교읍 증광리 세동부락의 ‘가는굴 유기공장’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옥바리 방짜반상기를 만들면서 전통공예의 전승작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한평생을 유기일에 바쳐온 그간의 업적으로 1983년 6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윤재덕 [尹在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0-5148 -7750(문자 주시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