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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가을, 136x44cm,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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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가을, 136x44cm, 1956년. <명성에 비해 근원 김용준작가의 작품을 접하기는 매우 어렵다> 김용준 (근원. 1904.-1967.) 유화가, 조선화가, 조선미술사 연구가. 1904년 경상북도 대구시 선산 출생 1921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 입학 1931년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 졸업. 유화가,미술평론가로 활동 1928년 서울중앙중학교, 보성중학교 미술교원 1950년 6월 까지 동국대학, 서울대 미술대학 교원 1951년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 조선건축가동맹중앙위원회 위원 1953년까지 평양미술대학 교원, 1955년까지 과학원고고학연구소 미술가 1956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장 1958년 조선미술가동맹대표단으로 중국방문, 개인전 개최 1959년 <조선화기법>, 1962년<조선화채색법>집필 1962년 예술학부교수 1967년 사망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1924년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서 유화 〈동십자각〉으로 입선하여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무렵 우리나라 서양화 제1세대로 파리에서 공부한 이종우가 연 도화교실에서 김주경·길진섭·이마동· 구본웅 등과 함께 서양화를 배웠다. 1926년 일본 도쿄 미술학교 서양화과에 들어가 길진섭·오지호와 사귀었다. 그의 사사나 교류는 당시 일본에서 일어난 반(反) 아카데미즘과 함께 그의 화풍을 인상주의 경향으로 몰고 갔다. 도쿄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그는 선전에는 출품하지 않고 서화협회전에만 출품하여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보였다. 1930년 4월 도쿄 미술학교 출신들의 신미술운동단체전인 동미전, 같은 해 12월 도쿄에서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한 백만양화회, 1934년에는 뒤에 반일단체로 지목받은 목일회 같은 미술단체를 만들어 1930년대의 화단을 이끌어나갔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범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건설본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서울대학교 미술학과 교수가 되었다. 9·28서울수복 당시 월북하여 북한 화단의 중심적인 화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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